본문 바로가기

타이탄의 도구들/일상 - Diary

11/15 화 - 예상하지 못한 도움을 주는 것은 인생의 큰 자극을 가져다 준다. (마도 치과 사랑니 발치 도움)

728x90
반응형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뿌듯함과 자신감, 자부심, 더 나아가 삶의 귀감이 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인가 오른쪽 윗니가 아프다고했던 마도는 결국 오늘 치과를 같이 좀 가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치과쯤이야 뭐 내가 매일 다니는 곳으로 가면 되겠다 싶어서 증세를 물어보았다.

들어보니 증세는 단순 충치로 인한 치통인듯 보였다.
우리 부장님께 상황을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 마도를 데리고 치과로 고고싱!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의학용어들 및 주의사항이 계속해서 나올 텐데 내가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이런저런 걱정을 가지고 치과로 향했다.

상황설명을 간단히 하고 마도의 치과치료 접수를 도왔다. (사실 도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별거 없었다.)

그렇게 치아 상태를 보기 위해 엑스레이를 촬영하였고, 그 결과 썩은 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도 치아 엑스레이 상태가 이상해보였다. 투명하면서도 하얀색 빛이 나야 하는 치아들 중에 오른쪽 맨 위, 맨 끝의 치아 하나가 검은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어보니 사랑니쪽이 썩었고, 한눈에 보더라도 약 50% 썩어서 검은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난 사랑니가 3개, 그중에서도 하나는 옆으로 자라고 있어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특별한 증세가 없어 발치를 하지 않았다.)

치과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이 정도 수준이면 무조건 발치 말고는 답이 없다고 하셨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스케일링은 덤까지...

일단 발치라는 상황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심각해졌다. 발치라니...? 한국에 와서 발치라니....?!?!
일단 차분하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다. 오른쪽 위 사랑니가 충치로 인해 박살 나기 직전이고,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 extract tooth를 해야 한다고.... 발치를 해야 한다고!!! 너의 이빨을 지금 당장 마취하고 뽑아야 한다고!!!

그렇게 설명을 하였다.

마도는 간단했다.
내 고통을 덜어준다고? 그럼 오케이, 너무 좋아.

.....?!
당연한 대답이면서도 단순했다. 망설임이 없었다. 그 순간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취.... (마취라는 단어도 처음 듣고 처음 써봤다. anaesthesia : 애내스띄지아) 마취를 설명하려다가 포기하고 네이버 영어사전을 빠르게 검색! 처음에 마취 크림(?) 같은 것을 잇몸(gum)에다가 바르고 약간의 대기를 가진다.

대기하는 동안 난 실실 웃으면서 마도에게 너 괜찮아?라고 자꾸 물어봤다. 뭔가 이 상황이 무척이나 웃겼다.

마도: I'm very good.

그러다 간호사 왈,
마도님의 잇몸과 치아 상태가 무척이나 좋지 않기 때문에 스케일링으로 청소를 먼저 하고 발치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 나와 마도는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러나...

인도 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이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서일까... 생각보다 많은 치석과 좋지 않은 잇몸상태로 인해 스케일링받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다. 피가 철철 흐르고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마도의 모습.... (부들부들거리더랍니다...)

긴급하게 스케일링을 종료하고, 치위생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것을 고대로 열심히 통역하였다.

너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그렇게 많지 않단다....
잇몸과 치아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스케일링을 받는 것을 무척 추천을 하시지만, 네가 그렇게 아프다면 스케일링은 굳이 끝까지 받지 않아도 발치는 가능하다고 하시네...
그러나 너의 잇몸과 치아상태가 좋지 않으니, 지금 잠깐은 엄청나게 괴롭고 힘들더라도 나중을 생각하면 지금의 고통을 참고 즐기는 것이 어떻겠니?라고 하시네....

안 되는 영어를 손짓 발짓 모든 것을 사용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케일링을 포기했다. (?)

사랑니 발치를 위한 마취제를 잇몸에 주사하고, 위잉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발치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굳이 뒤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대기실에서 대기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서 마도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마치 세상을 잃은 표정을 하며...
고통스러웠냐고 물어봤더니 스케일링할 때는 죽을 것 같았지만, 다른 분들이 너무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자기를 다뤄주었기 때문에 발치를 고통 없이 끝낼 수 있어다며 좋아하더라.

그렇게 마무리 주의사항을 듣고 전달을 해 주었다.
결제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약국 (pharmacy)로 가서 오늘부터 약 3일간 먹을 진통제, 항생제와 염증약을 받아왔다.


터벅터벅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

알 수 없는 뿌듯함과 자신감, 자부심과 긍지, 만족감 등 알 수 없는 온갖 긍정적인 기운과 에너지가 내 안에서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을 마도도 같이 느꼈는지 나를 보며 시익 웃었다.

걱정했던 일에 대해서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좋은 결과를 얻었고 나 개인적으로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외국인을 데리고 병원을 가 본 적도 처음일뿐더러, 하는 이야기들을 약간의 막힘은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에는 술술 나왔다. 아무래도 주변에 보이는 눈들도 많고, 의료 행위를 해야 하니 정확한 설명을 해야 한다는 걱정과 압박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할 수 있던 영어실력보다 120% 이상으로 발휘한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험 보고, 성장해 나간다고 하는가 보다.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언제 이렇게 외국인을 데리고 내가 아는 사람(내가 아는 병원)을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고 설명까지 해 줄 수 있을까? 게다가 그 경험으로 인해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그리고 동료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마도에게 물어보니 약 2주 전부터 작지만 고통이 시작되고 있었다고 한다.
생각을 해보자.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와서 2주 동안 치통으로 고통받고 있고, 주변 동료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귀찮은 듯이 대응을 하거나 잘 알려주지 않았을 때 느끼는 그 사람의 감정을.

오늘은 힘들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으며, 개인적으로도 한 층 더 성장한 하루를 보냈다.

매일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벤트들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이 또 생긴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힘들어도 즐거운 일들, 보람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파이팅!

반응형